주식회사의 이사는 이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자다(상법 제393조). 이사는 근로자가 아니므로 회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아니고, 임용계약이라는 일종의 위임계약을 체결한다(상법 제382조제2항). 이 위임계약에 따라 이사는 회사에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를 부담한다. 위임계약의 당사자인 회사에 의무를 부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사를 선임하고 해임하는 권한은 어떤 기관에게 있는 것일까?
상법은 이사의 선임권한이 주주총회에 있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상법 제382조 제1항). 따라서 이사는 이사선임을 목적으로 하는 주주총회의 결의에서 보통결의로 선임된다. 그러나 이사가 이사로서의 지위를 갖기 위해서는 선임결의만으로는 부족하다. 일단 후보자 당사자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회사와 위임계약 관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회사’와 임용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그렇다면 회사는 이사와 어떻게 임용계약을 체결하는 것일까? 주식회사는 법인이므로 대표기관인 대표이사를 통해 대외적인 활동을 한다(상법 제389조 제3항, 동법 제209조 제1항). 즉 대표권은 대표이사에게 있으므로 ‘대표이사’가 회사를 대표해 이사와 임용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그리고 계약은 청약과 승낙의 의사표시가 합치함으로써 효력이 발생한다. 여기서 청약은 회사(대표이사)가 하는 것이고, 승낙은 주주총회에서 이사로 선임된 자가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어떤 후보자가 이사선임을 의제로 하는 주주총회의 의안으로 등록되면, 주주총회는 그를 이사로 선임할지를 결정한다. 선임을 찬성하는 주주의 주식수가 출석주주의 주식수의 과반이며, 발행주식 총수의 4분의 1이상인 경우, 선임하는 것으로 의결된다. 이때 바로 이사의 지위를 취득하는 것은 아니고, 주주총회의 선임결의를 바탕으로 회사를 대표하는 대표이사와 임용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이사의 지위를 갖게 된다. 물론 이사의 선임 및 해임은 등기사항이므로 등기를 해야 하지만, 이사 선임 및 해임 등기는 대항요건에 불과하므로, 등기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사가 아닌 것은 아니다.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보이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주주총회에서 특정인을 이사로 선임하기로 결의했지만, 대표이사가 그 이사 선임을 반대한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대표이사가 임용계약의 청약을 하지 않는다면 어떤가. 그 후보자는 주주총회에서 이사로 선임됐지만, 회사와의 임용계약을 체결하지 못한다. 후보자가 이사로 취임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대표이사가 청약을 하지 않았으므로, 계약성립을 위한 의사의 합치가 없고, 따라서 회사와 임용계약도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합리적인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렇게 법리를 구성할 경우 이사의 선임권한이 주주총회에 있다고 선언한 상법의 규정이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과거 이런 점을 악용한 경우가 있어 문제로 지적돼 왔고,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다음과 같이 판시한 바 있다(2016다251215 전원합의체 판결).
"이사·감사의 지위가 주주총회의 선임결의와 별도로 대표이사와 사이에 임용계약이 체결되어야만 비로소 인정된다고 보는 것은, 이사·감사의 선임을 주주총회의 전속적 권한으로 규정하여 주주들의 단체적 의사결정 사항으로 정한 상법의 취지에 배치된다. 또한 상법상 대표이사는 회사를 대표하며, 회사의 영업에 관한 재판상 또는 재판 외의 모든 행위를 할 권한이 있으나, 이사·감사의 선임이 여기에 속하지 아니함은 법문상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사·감사의 지위는 주주총회의 선임결의가 있고 선임된 사람의 동의가 있으면 취득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즉 대법원은 주주총회에서 특정인을 이사로 선임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표이사가 다시 이사 선임 여부를 결정하고자 하는 것을 막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주주총회의 선임결의와 후보자의 승낙만으로 이사의 지위를 취득한다고 보는 것이다.
주식회사라는 사적 조직에서도 이미 확립된 간단명료한 법리가, 국가 운영의 핵심 기관에서는 오히려 무시되는 듯한 모양새가 안타깝다. 권력분립과 민주적 정당성이 핵심인 현대 국가에서 ‘임명’은 그저 절차적 확인에 지나지 않는다. 주주총회가 결정한 이사를 대표이사가 다시 재단하지 못하는 것처럼,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을 대통령(또는 권한대행)이 선별·지연·거부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진수 아이앤아이리서치 대표
출처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https://www.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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