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슈 리포트

[자치시대] 주주 권익과 기업 경영의 새로운 방향

 

 지난 13일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은 기업 지배구조와 주주 권리에 대한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고, 상장회사의 전자 주주총회 개최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주주 보호와 기업 경영의 투명성 제고를 위한 제도적 개선으로 해석되지만, 기업 현장의 수용 가능성과 제도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경제계에서는 법안 통과 직후 강한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기업 의견이 반영되지 못한 졸속 입법"이라며 유감을 표명했고,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제인협회 등 주요 경제단체들도 공동 성명을 통해 법안 재의 요구를 촉구했다. 정부는 4월 5일까지 이 법안의 공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개정안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장한 것이다. 경영자의 의사결정에 있어 단순히 회사의 이익뿐 아니라 주주의 개별적 또는 집합적 이익도 고려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동안 상법은 주주보다는 경영자의 재량과 판단을 중심에 두는 구조였고, 이사의 책임 범위도 비교적 좁게 해석돼 왔다. 주주 가치 보호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지속돼 온 상황에서 이번 개정은 이러한 문제를 제도적으로 개선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특히 장기 투자자나 소액 주주의 권익을 명시적으로 보호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재계는 ‘주주’라는 개념이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는 점을 문제 삼는다. 주주 중에는 국민연금 같은 장기 투자자부터 단기 차익을 노리는 외국계 펀드, 행동주의 투자자, 개인 소액 주주까지 다양하다. 이들의 이해관계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으며, 때로는 충돌하기도 한다. 이 상황에서 모든 주주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무는 오히려 경영 판단을 경직시키고, 방어적 경영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가 이사의 손해배상책임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근거로 기능할 수 있는 조항이 되면서 소송 리스크가 증가하고, 그로 인해 이사회 운영이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과거 ‘회사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 조항 역시 실제 소송에서 중요한 법적 기준으로 작용한 사례는 제한적이었으며, 이번 개정도 실질적 효과보다는 선언적 성격에 그칠 수 있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결국, 법적 불확실성이 오히려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상장회사들이 비대면 방식의 주총 시스템을 도입하도록 강제하는 전자 주주총회 의무화 조항 역시 논란의 중심에 있다. 주주의 접근성을 높이고 의결권 행사를 활성화하는 데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 특히 해외 투자자나 물리적으로 참석이 어려운 주주들의 참여 기회를 확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중소형 상장사들에게는 새로운 부담일 수 있다. 시스템 도입 초기 비용, 보안 문제, 주주 본인 인증 절차 등의 문제는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충분한 준비 기간과 인프라 지원 없이 의무화를 강제할 경우, 오히려 형식적 운영에 그치거나 불완전한 시스템으로 인한 법적 분쟁을 유발할 수도 있다.

 이처럼 상법 개정안은 긍정적인 측면과 우려가 병존한다. 방향성 자체는 한국 기업 환경에 필요했던 변화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동안 지배구조 개편 논의는 거버넌스 개선의 필요성은 인정되면서도 실질적인 제도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번 개정을 통해 그 출발점이 마련됐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제도의 설계가 법적 안정성과 기업 현실에 기반하지 않는다면, 의도한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부작용만 초래할 수 있다. 충실 의무 확대와 같은 원칙 선언에 그치지 않고, 그것이 실제 분쟁에서 어떻게 해석될 것인지, 경영 책임과 연결되는 법적 기준은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제도적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 진정으로 주주와 기업 모두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제도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경영의 자율성과 책임, 주주의 권익 보호와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 이 두 축이 조화를 이루는 법적 환경이야말로 우리 경제에 실질적인 신뢰를 가져다줄 것이다.

이진수 아이앤아이리서치 대표

출처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https://www.joongboo.com)